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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는 것이 아니라 빨리 찾는 것이 목적이다

ndev-note 2026. 10. 7. 13:57

2026년 4월부터 국내 항공사의 보조배터리 규정이 강화됐습니다. 160Wh 이하 1인당 최대 2개, 기내 사용 및 충전 전면 금지, 머리 위 선반 보관 금지까지요. 일본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조치를 시행했고, 유럽 항공사들도 움직였습니다.

규정만 보면 과하다 싶은데, 각 조항의 이유를 보면 일관된 논리가 있습니다.

바뀐 내용



핵심은 네 가지입니다. 개수 제한(160Wh 이하 2개), 기내 사용·충전 금지, 선반 보관 금지, 단자 절연 처리.

여기서 눈에 띄는 건 좌석 USB 포트로 보조배터리를 충전하는 것도 금지됐다는 점입니다. 폰을 충전하는 것뿐 아니라 보조배터리 자체를 충전하는 것도 안 됩니다.

그리고 용량이 작아도 개수 제한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100Wh짜리 작은 것 3개는 안 되고 2개까지만 됩니다.

각 조항의 논리



왜 선반이 안 되나. 이게 가장 설명이 필요한 조항인데, 답은 단순합니다. 발견 시점 때문입니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열폭주(thermal runaway)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내부 온도가 오르면 발열 반응이 더 큰 발열을 부르는 연쇄가 시작되는데, 일단 시작되면 외부에서 끄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초기 몇 초에 대응하는 게 결정적입니다.

선반 안에서 발연이 시작되면 아무도 모릅니다. 눈앞에 두면 연기나 부풀어 오름을 바로 볼 수 있고요. 즉 이 규정은 화재를 막는 조치가 아니라 빨리 발견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2025년 1월 국내 항공기에서 선반 내 보조배터리로 인한 화재가 발생한 것이 규정 강화의 직접적 계기로 거론됩니다.

왜 위탁수하물이 안 되나. 같은 논리의 극단입니다. 화물칸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고 상황을 확인할 방법도 없습니다.

왜 사용이 금지되나. 충전 상태에서 발열 위험이 가장 큽니다. 전류가 흐르고 있고 온도가 오르니까요. 사용을 막으면 그만큼 사고 확률이 줄어듭니다.

왜 단자를 절연하나. 가방 안에서 열쇠나 동전 같은 금속에 단자가 닿으면 외부 단락이 일어납니다. 순간적으로 큰 전류가 흐르면서 발열로 이어지고요. 테이프나 지퍼백으로 막는 건 원시적으로 보여도 이 경로를 차단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37일차 글과 이어지는 지점

전고체 배터리를 다루면서 액체 전해질이 가연성이라는 게 구조적 문제라고 썼는데, 이 규정들이 그 문제의 현재 상태를 보여줍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 가연성 유기 전해액이 있고, 분리막이 손상되거나 과열되면 내부 단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보호회로를 넣어도 물리적 충격이나 제조 결함은 남습니다.

그래서 현재 대응은 배터리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과 사고 시 피해를 줄이는 것 두 축으로 갑니다. 항공 규정은 후자에 속하고요. 전고체가 상용화되면 이 규정들도 완화될 여지가 생기겠지만, 37일차에서 봤듯 그건 2030년 전후 얘기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쪽에서

보조배터리나 배터리 내장 기기를 다룬다면 짚어볼 지점이 있습니다.

용량 표기. 규정이 Wh 기준인데 제품에는 mAh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산식이 필요한데(Wh = mAh × 전압 ÷ 1000) 소비자가 직접 계산하기는 번거롭습니다. Wh를 함께 표기하는 것만으로 사용자 혼란이 줄어듭니다.

배터리 분리 가능 여부. 무선 고데기처럼 배터리를 분리할 수 없는 발열 기기는 기내 반입과 위탁이 모두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리형으로 설계하거나 물리적 전원 차단 수단을 두면 운송 가능성이 달라집니다.

58일차 수리할 권리 글에서 배터리 교체 가능성이 기기 수명과 연결된다고 했는데, 운송 가능성과도 연결되는 셈입니다.

정리

이 규정들은 "리튬배터리가 위험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사고가 났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설계입니다.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사용하지 않고, 총량을 줄이는 것.

26일차 클라우드 장애, 40일차 백업 글에서 다룬 복원력 관점과 같은 발상입니다. 사고를 0으로 만들 수 없다면 발생 시 피해를 줄이는 쪽으로 설계하는 것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