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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옮겨도 해석은 안 따라온다

ndev-note 2026. 10. 8. 12:44

"내 개인정보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전송요구권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의료와 통신 분야에 한정돼 있었습니다.

2026년 2월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이 권리가 전 산업 분야로 넓어졌고, 8월부터 적용됩니다. 교통, 유통, 문화·여가까지 포함되죠.

권리가 넓어진 건 분명한데, 실제로 무엇이 달라지는지는 제외 조항을 봐야 보입니다.

무엇이 전송 대상인가



전송 대상은 동의를 통해 제공한 정보, 계약 이행 과정에서 쌓인 정보, 법령에 따라 수집된 정보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조회하던 내역을 내려받는 것도 포함되고요.

중요한 건 제외 항목입니다. 개인정보처리자가 분석·가공해 새로 만든 **'별도 생성 정보'**는 빠집니다. 타인의 권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정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도 마찬가지고요.

이 조항의 의미를 생각해볼 만합니다. 내가 입력한 원본은 가져올 수 있지만, 기업이 그걸로 만들어낸 결과물은 가져올 수 없습니다. 구매 내역은 받을 수 있어도 그걸 분석해 산출한 선호도 프로필이나 등급은 받을 수 없는 거죠.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보호입니다. 분석 모델이 핵심 자산이니까요. 다만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데이터는 이동해도 그 데이터가 만들어낸 가치는 이동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29일차 추천 알고리즘 글에서 "알고리즘을 공개해도 투명해지지 않는다"고 썼는데, 여기서도 비슷합니다. 입력은 옮길 수 있지만 그걸 해석하는 능력은 남는 쪽에 있습니다.

API를 원칙으로 한 이유



전송 방식으로 API가 권장되고, 화면에서 정보를 긁어오는 스크래핑은 단기적·제한적으로만 허용됩니다. 대리인이 스크래핑을 쓰려면 사전 협의가 필요하고요.

기술적으로 보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스크래핑은 사용자 계정 정보를 대리인에게 넘겨야 하는 경우가 많고, 화면 구조가 바뀌면 깨지고, 어디까지 가져갔는지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API는 범위를 명시적으로 정할 수 있죠.

다만 현실적 부담도 있습니다. 대상 기업이 전송용 API를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기준을 매출 1,800억원 초과에 정보주체 100만명 이상(또는 민감·고유식별정보 5만명 이상)으로 두고, 중소기업은 제외했습니다.

이 기준선이 제도의 실효 범위를 정합니다. 내가 쓰는 서비스가 대상이 아니면 권리를 행사할 곳이 없으니까요.

금융 마이데이터가 남긴 교훈

이 제도를 평가할 때 참고할 선례가 있습니다. 금융 분야 마이데이터입니다.

먼저 도입됐는데, 사업자 면허를 반납한 곳이 10곳 넘게 나왔습니다. 데이터를 모을 수 있게 됐지만 그걸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웠던 거죠.

이유를 짐작해보면 몇 가지가 겹칩니다. 흩어진 데이터를 모아 보여주는 것 자체는 차별화가 안 되고, API 연동과 보안 유지에 비용이 들고, 사용자가 굳이 옮길 이유를 못 느꼈습니다.

61일차 소버린 AI 글에서 "만드는 것과 쓰이게 하는 것은 다르다"고 썼는데, 여기서도 같은 구조가 보입니다. 제도가 가능하게 만든 것과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것 사이에 거리가 있습니다.

전 분야 확대가 이 관성을 그대로 물려받을지, 아니면 분야가 넓어지면서 새로운 조합이 나올지가 관건으로 보입니다.

만드는 쪽에서

서비스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전송 대상 여부 판단. 매출과 정보주체 수 기준을 확인해야 합니다. 공공시스템 운영기관의 경우 특정 시스템이 아니라 기관이 관리하는 모든 시스템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점이 안내돼 있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정비. 본인전송 요구 방법과 전송 대상 정보를 게재해야 합니다.

단계적 대응이 가능합니다.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스템부터 먼저 마련하고, 나머지는 확대 일정을 공지한 뒤 순차 조치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구조 점검. 어떤 정보가 '별도 생성 정보'에 해당하는지 구분해둬야 합니다. 원본과 가공물이 뒤섞여 저장돼 있으면 전송 범위를 정할 때 곤란해집니다.

정리

마이데이터는 데이터 소유 구조를 바꾸는 제도가 아니라 이동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효과도 "내 데이터를 되찾는다"보다 "옮겨서 다른 데서 쓸 수 있다"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효용은 옮긴 데이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육·고용 분야 확대가 입법예고된 것도 그 방향인데, 취업 때마다 반복 제출하던 증빙을 줄일 수 있다면 체감이 분명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