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차에 AI 기본법을 정리하면서 '고영향 AI' 목록에 채용이 들어 있는 걸 봤습니다. 의료, 에너지, 교통과 나란히요. 처음엔 좀 과하다 싶었는데, 채용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들여다보니 납득이 됐습니다.
양쪽 모두 AI를 쓰기 시작했다

지원자가 AI로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지원 장벽이 낮아졌습니다. 예전에는 한 곳에 지원하는 데 몇 시간이 걸렸으니 자연스럽게 지원 수가 제한됐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기업의 서류 검토 부담이 폭증했고, 그래서 기업도 AI로 1차 선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지원자는 AI를 통과하기 위한 지원서를 더 쓰게 됩니다.
서로의 AI가 서로를 상대하는 구조입니다. 지원자도 기업도 더 바빠졌는데, 매칭 품질이 좋아졌다는 증거는 딱히 없습니다. 전형적인 군비 경쟁이죠.
국내 도입 속도도 빠릅니다. 고용노동부·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 따르면 주요 기업 다섯 곳 중 한 곳이 이미 채용에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초기 실험 단계는 지났다고 봐야 합니다.
공정한가

업체들은 AI가 학벌이나 출신에 영향받지 않고 역량만 본다고 홍보합니다. 실제로 모든 지원자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건 사람 면접관보다 나은 면이 있습니다. 컨디션에 따라 평가가 흔들리지 않고, 면접관 개인의 선호도 개입하지 않으니까요.
반대편 논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편향 학습. AI는 과거 채용 데이터를 학습합니다. 그 데이터에 이미 편향이 있다면 AI는 그걸 재생산합니다. 아마존이 과거 이력서 데이터로 학습시킨 채용 AI가 여성 지원자를 불리하게 평가해 폐기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숫자가 나온다고 해서 편향이 없는 건 아닙니다.
설명 불가능성. 떨어진 이유를 물어도 답이 안 나옵니다. 사람 면접관이면 "직무 경험이 부족했다" 같은 설명이 가능한데, 모델의 판단은 그렇게 분해되지 않습니다.
직무 무관 요소. 표정이나 말투, 시선 처리를 평가하는 방식이 논란입니다. 그게 업무 성과와 상관이 있다는 근거가 충분한지 의문이고, 특정 성향이나 장애가 있는 지원자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대응 요령의 격차. AI 역량검사 대비 강의와 컨설팅이 이미 시장을 형성했습니다. 학벌 격차를 없앤다더니 정보 격차를 새로 만든 셈입니다.
어느 쪽이 맞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다만 "AI라서 객관적"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로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무엇을 학습했고 무엇을 평가하는지에 달린 문제니까요.
제도는 따라오는 중
AI 기본법에서 채용이 고영향 AI로 분류되면 안전성 확보, 사람의 감독, 판단 근거 설명, 문서화가 요구됩니다.
채용절차법 쪽에서도 구인자 의무를 확대하는 개정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확정된 조문은 아니지만, 거론되는 방향은 대략 이렇습니다. AI를 쓰는 전형 단계를 공고에 미리 알리기, AI 결과가 자동 결정인지 참고자료인지 명시하기, 사람이 최종 검토하는 단계를 남기고 기록하기, 성별이나 연령 같은 변수와 결과 사이에 쏠림이 없는지 점검하기.
HR 시스템을 만드는 입장이라면 이건 나중에 붙일 기능이 아니라 처음부터 들어가야 하는 요구사항입니다. 사후에 "왜 이 지원자가 탈락했는가"를 재구성하려면 판단 시점의 입력과 스코어, 검토자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로그를 안 남기고 운영하다가 소급해서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예상 못 한 문제: 면접 사기
흥미로운 부작용도 있습니다. 화상 면접이 일반화되면서 딥페이크로 신원을 위조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보안 기업 보고서에 따르면 딥페이크 지식이 없는 사람도 오래된 PC로 한 시간이면 실시간 면접용 가짜 신원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 기업의 23%가 신입 채용에서 신분 도용 피해를 입었다는 조사도 있고, FBI는 북한 IT 인력이 딥페이크로 원격 IT 직무에 대량 지원한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14일차 보이스피싱 글에서 다뤘던 얘기와 같은 뿌리입니다. 얼굴과 목소리가 더 이상 신원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리
채용이 고영향 AI로 분류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떨어진 사람에게 설명되지 않는 결정이 반복되면, 그게 개인의 생계와 직결되니까요.
지원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하나는 있습니다. AI가 못 만드는 구체성을 갖추는 것. 실시간 과제나 구조화 면접에서는 완성된 답보다 의사결정 과정이 드러납니다. 어떤 제약이 있었고, 무엇을 선택했고, 예상과 달랐을 때 어떻게 고쳤는지를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느냐. 15일차 제로클릭 글에서도 비슷한 결론에 닿았는데, AI 시대에 남는 건 결국 AI가 만들 수 없는 것들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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