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지점을 일부러 없앤다

화면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면 "체류 시간을 늘려달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지표를 올리는 건 당연한 목표인데, 그 요구를 구현하는 방법 중 일부는 결과적으로 사용자가 멈추기 어렵게 만듭니다.
23일차에 다크패턴 규제를 다뤘는데, 그건 "속이는 설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번엔 속이지 않으면서도 멈추기 어렵게 만드는 쪽을 정리해봤습니다. 규제 대상은 아니지만 구현하는 사람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영역이라서요.
멈출 신호를 제거하는 방식

무한 스크롤. 페이지네이션을 없애면 "끝"이라는 신호가 사라집니다. 예전에는 2페이지로 넘어갈지 결정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결정 지점 자체가 없습니다. 사용자가 그만두려면 자발적으로 중단해야 하고, 그건 인지적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자동 재생. 다음 콘텐츠가 알아서 시작되면 "계속 볼까"라는 질문이 "그만 볼까"로 바뀝니다. 기본값이 계속 보기가 되는 거죠. 기본값의 힘은 강력해서, 같은 선택지라도 어느 쪽이 기본인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예측 불가능한 보상. 새로고침할 때마다 결과가 다르면 한 번 더 시도할 유인이 생깁니다. 심리학에서 가변 비율 강화라고 부르는 패턴인데, 피드 형태의 서비스 대부분이 이 구조를 갖습니다.
알림과 배지. 앱을 닫아도 끌어당기는 장치입니다. 빨간 숫자는 미완료 상태를 표시해서 해소하고 싶게 만듭니다.
이 패턴들이 전부 악의적인 건 아닙니다. 무한 스크롤은 실제로 모바일에서 편하고, 자동 재생은 사용자가 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문제는 사용자에게 유리한 선택과 지표에 유리한 선택이 갈릴 때 어느 쪽을 기본값으로 두느냐입니다.
의지력 문제로 환원하기 어렵다
이 얘기가 "자제력을 키우자"로 끝나면 번지수가 틀립니다.
설계는 비대칭적입니다. 수천 번의 A/B 테스트로 최적화된 인터페이스와 개인의 순간적 판단이 맞붙는 구조니까요. 29일차 추천 알고리즘 글에서 "알고리즘은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오래 본 것을 믿는다"고 썼는데, 그 최적화 대상이 정확히 멈추지 않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개인 차원의 대응도 의지보다 환경 설정으로 접근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마찰을 한 단계 추가하는 쪽이요.
플랫폼이 제공하는 통제 수단

운영체제 차원에서 꽤 쓸 만한 도구가 들어 있는데 의외로 안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설정의 디지털 웰빙 및 자녀 보호 기능에서 앱별 사용 시간, 잠금 해제 횟수, 받은 알림 수를 볼 수 있습니다. 앱 타이머로 하루 한도를 정하면 초과 시 앱이 잠기고, 취침 모드는 화면을 흑백으로 바꾸면서 알림을 무음 처리합니다.
아이폰은 설정의 스크린 타임에서 같은 기능을 제공합니다. 집중 모드와 연동하면 시간대별로 다른 규칙을 적용할 수도 있고요.
여기서 흑백 전환이 생각보다 효과적입니다. 색상이 주는 자극이 사라지면 같은 콘텐츠도 덜 끌립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단순하면서 체감이 큰 설정이라고 봅니다.
홈 화면 정리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앱을 삭제하면 다시 깔게 되지만, 첫 화면에서 치워서 검색으로 열게 만들면 그 몇 초 사이에 "왜 열려고 했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삭제보다 오래가는 방법입니다.
만드는 입장에서
규제가 없는 영역이라 결국 판단의 문제가 됩니다. 몇 가지 질문을 두고 보면 선이 좀 명확해집니다.
기본값이 누구에게 유리한가. 자동 재생을 켜두는 게 사용자가 원해서인지 지표 때문인지 구분할 수 있는지.
멈출 지점이 있는가. 일정 분량 뒤에 "여기까지 봤습니다" 같은 신호를 주는 설계가 가능한지. 실제로 일부 서비스는 이런 구분선을 넣습니다.
알림이 사용자를 위한 것인가. 꼭 지금 알아야 하는 정보인지, 재방문을 유도하려는 장치인지.
통제 수단을 숨기지 않았는가. 자동 재생 끄기나 알림 설정이 몇 단계 깊이에 묻혀 있지는 않은지. 23일차에서 다룬 "잘못된 계층구조"가 여기서도 적용됩니다.
정리
주의를 끄는 설계는 광고 기반 비즈니스 모델의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체류 시간이 매출로 직결되면 그걸 최적화하는 게 합리적 행동이니까요. 그래서 개별 기업을 탓하는 것만으로는 바뀌기 어렵습니다.
다만 만드는 쪽에서 "이 기능이 사용자에게 유리한가 지표에 유리한가"를 한 번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쓰는 쪽에서는 의지를 다지기보다 설정을 바꾸는 편이 실제로 효과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