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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은 상속되지 않는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ndev-note 2026. 9. 21. 18:57

22일차에 모바일 신분증을 정리하면서 신원이 디지털로 옮겨가는 얘기를 했는데, 그 연장선에서 잘 안 다뤄지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 신원과 데이터의 주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어떻게 되느냐는 것요.

가볍게 볼 얘기는 아니지만, 미리 알아두면 준비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라 정리해봤습니다.

계정은 '물건'이 아니다

직관적으로는 계정도 재산 같으니 상속되지 않을까 싶은데, 법적으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선 민법이 규정하는 물건이나 지적재산권 개념에 계정이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계정 자체는 서비스 이용 계약상의 지위에 가깝고, 대부분의 약관은 이를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도 변수입니다. 이 법은 원칙적으로 생존하는 자연인의 정보를 보호 대상으로 합니다. 그래서 고인의 정보는 이 법의 보호 범위 밖이라는 해석이 가능한데, 문제는 그 계정 안에 남아 있는 대화 상대방의 정보는 여전히 생존자의 정보라는 점입니다. 메신저 대화를 유족에게 넘기면 상대방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구조죠.

법조계에서도 상속인에게 계정 접속 청구권이 인정되는지, 고인의 인격권에 대한 사후 보호와 충돌하지 않는지가 쟁점으로 다뤄집니다. 국내에는 2026년 현재 이 문제를 전담해 규율하는 법률이 없습니다.

기술적으로도 어렵다

제도만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몇 년간 보안이 강화된 결과가 정확히 이 지점에서 역효과를 냅니다.

기기 전체 암호화가 기본이 되면서 잠금을 모르면 제조사도 풀어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4일차에 다룬 패스키처럼 개인키가 기기 안에 있는 인증 방식도 마찬가지고요. 2단계 인증이 걸려 있으면 비밀번호를 알아도 접근이 막힙니다.

보안 설계의 목표가 "본인 외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인데, 본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은 그 설계가 상정하지 않은 케이스입니다. 이건 버그가 아니라 사양에 가깝습니다.

플랫폼별 대응



그래서 주요 플랫폼들은 법이 아니라 자체 기능으로 이 문제를 다룹니다.

구글은 '비활성 계정 관리자'를 제공합니다. 일정 기간 로그인이 없으면 지정한 사람에게 데이터를 전달하거나 계정을 삭제하도록 설정할 수 있습니다. 사전 지정이 없어도 유족이 서류를 제출해 요청할 수 있는 절차가 있고, 아무 요청이 없는 휴면 계정은 일정 기간 후 삭제됩니다.

애플은 '디지털 유산 연락처'를 두고, 접근 코드와 사망증명서로 기기·클라우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합니다.

삼성은 갤럭시 S25부터 '디지털 유산' 기능을 넣었습니다. 유산 관리자를 최대 5명까지 지정할 수 있고, 연락처·통화 기록·음성 녹음·캘린더·노트가 대상입니다. 사진, 영상, 카드 정보, 건강 정보는 제외됩니다.

메타는 '사후 연락자'를 지정해 추모 계정 전환이나 삭제를 맡길 수 있는데, 메시지는 대상에서 빠집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느 쪽도 계정 전체를 넘기지 않는다는 것. 삼성이 사진을 뺀 것도, 메타가 메시지를 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고인의 프라이버시와 제3자의 프라이버시가 가장 많이 얽힌 데이터니까요.

국내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입니다. 별도 승계 기능 없이 유족 요청 시 탈퇴 처리 정도이고, 데이터 백업 지원은 제한적입니다. 규정이 없으니 기업이 먼저 나서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합니다.

유족이 임의로 하면 안 되는 것

이 부분은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이라도 무단 접근은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생전 위임 없이 비밀번호를 해제해 계정에 들어가는 것, 고인 명의 계정의 수익을 임의로 인출하는 것, 간편결제 잔액을 무단으로 빼는 것 모두 분쟁 소지가 있습니다. 관행적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원칙은 그렇습니다.

실무 관점에서

서비스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생각해볼 지점이 있습니다.

휴면·사망 계정 처리 정책이 약관에 있는지, 유족 문의가 들어왔을 때의 절차가 정해져 있는지 같은 것들요.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유족들이 고인의 계정에 등록된 지인 정보를 요청한 사례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런 요청이 왔을 때 거절할 근거도, 수용할 근거도 없는 상태가 가장 곤란합니다.

무한히 남는 데이터의 비용 문제도 있습니다. 사용자가 늘고 서비스가 오래될수록 접근되지 않는 데이터가 쌓이는데, 이걸 언제까지 보관할지도 결국 정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정리

기술은 "본인만 접근 가능"을 목표로 발전해왔는데, 그 설계가 사람의 유한성과 만나면서 공백이 생겼습니다. 제도는 아직 따라오지 않았고, 당분간은 각 플랫폼의 사전 설정 기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생전에 설정해두지 않으면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구글과 애플 설정에 들어가 사후 연락처를 지정하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니, 미뤄둘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